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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3

노산의 문학적 업적과 더불어 그의 삶의 행적 또한 신중하게 보아야 하겠다. 노산 이은상은 친일잡지『조광(朝光)』의 주간으로 재직했고,만주국 기관지 《만선일보》에도 재직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1955년 이승만 80회 생일 때 '송가(頌歌)'라는 제목의 경축시를 발표했다. 이은상은 해방 후에 이승만 정권의 3·15부정선거에 앞장서 문인 유세단을 조직해 전국 순회유세를 벌이기도 하였다. 노산은 1960년 3월 정부통령 선거에서 자유당 전국유세단의 일원으로 “이승만 박사의 위대함과 이기붕 의장의 성실하고 자애로운 인간성”을 설명하였다. 1960년 4월 11일 마산상고 입학생 김주열의 시신이 떠올라 2차 마산의거가 진행되던 시점에 “3․15사태는 불합리와 불합법이 빚어낸 불상사”이며 “지성을 잃어버린 데모”라고 하였다. 1961년 군사쿠데타로 박정희가 집권하자 공화당 창당선언문을 써.. 더보기
창원시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조례 제정을 위한 시민공청회 정부자료에 의하면 2015년 기준 전국의 노숙인 수는 11,901명으로 집계되었습니다. 그러나 거리노숙인과 쉼터노숙인 이외에도 통계수치로 확인되지 않은 노숙인을 포함하면 사실상 전국의 노숙인 수는 약 수만에서 수십만 여명에까지 이르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특히 노숙인은 1997년 외환위기 이전에는 거의 눈에 띄지 않았으나, 외환위기 이후인 1998년에는 전국적으로 약 2,000명의 노숙인이 발생하는 양상을 보이기 시작하여, 1999년 노숙인의 수가 약 5,500명에 다다랐고, 그 수는 현재까지 꾸준히 증가 및 고착화되어 가는 실정이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노숙인의 증가 및 고착화로 인하여 다양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고, 나아가 노숙인이 범죄에 노출되어 또 다른 사회문제를 야기하는 것입니다. 먼저 노숙은 개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