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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을 치유하고 생명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촛불!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치는 온 우주다.

생명의 존엄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얼마살지 못 한 나로선!
우리 시대의 가장 큰 치료대상은 생명존엄의 상실이다.

일제시대와 6.25를 껵은 우리할머니도
수많은 죽음을 목도하셨고 그냥 그 고통을 "억억" 소리없이 숨죽여 울어야만 하셨다.
일제시대 일본 오사카로 일하러 가셨던 할아버지!
전쟁통에 겪은 수많은 죽음대신 해방과 함께 살았다는 안도감 하나로 아무런 노동의 댓가없이 귀국선에 오르신 할아버지도 그냥 그 고통과 억울함을 "억억" 소리없이 숨죽여 울어야만 하셨다.
혹시 그 슬픔의 동조가! 생명존엄의 가치표현이 자신과 가족의 슬픈 일로 다가 올 수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해방된 조국의
"가만히 있어라"는 무언의 지시였을 것이다.

아침의 새마을 노래와 밤의 통행금지와
낮의 막걸리와 밤의 시바스 리갈처럼
발전과 억압이 공존했고
베트남 전쟁과 미싱사의 손가락이 찢겨져가고
소리없이 죽어간 노동자들이 무덤가로 향하는 일이 빈번해도!
그나마 내식구 입에 밥한톨 먹이는게 삶의 지향점인 내아버지 시절에도
생명의 존엄 앞에
그저 밥한끼 먹고 살려면
"가만히 있어라"는 무언의 지시가 존재했었다.

찢어지게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큰형이 베트남가서 번 돈!
애미가 진흙탕 뻘 밭에서 거센 밀물이 밀려와도
제일 마지막까지 남아 뻘을 헤집고 잡아낸 바지락팔아
소 사고 논 사고!
그 소가 놓은 송아지 팔고!
그 논의 쌀을 매상에 넘겨!
대학보낸 가름아들!
80년대 거리로 쏟아져 나온 인파속에서도!
우리 아버지! 우리 어머니! 우리 형님! 우리 형수!의 고난을 갚기위해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내 삼촌들의 삶에서도
이러한 생명의 존엄은 무뎌져갔다.

무너진 생명의 존엄의 크기 만큼
숨겨진 상처는 더해져갔다.
긴 시절
치유 못 한 상처는 각자의 삶에
트라우마로 남겨지고 있었다.

90년대 백화점이 무너졌어도!
우린 더 큰 죽음도 목도했다하셨다.
지하철에 불이 나도
우린 더 큰 죽음도 목도했다하셨다.

이제!
나의 시절이다.
아침 출근길 수학여행 가던  배가 가라앉고 있다는 뉴스가 나왔다.
저 정도의 사고는 다 구할 수 있겠지?
배 하나는 잘 만드는 국가아닌가?
모두 뛰쳐나와 구해졌겠지?
그냥 덤덤히 넘겼다!
무뎌진 생명 존엄에 대한 댓가였다.
치유하지 못한 시대의 아픔의 댓가였다.

304명의 안타까운 죽음
아직도 뼈한조각 찾지못한 9분!의 미수습자분들!
유가족이 되었으면 한다는 8가족의 단장의 아픔!
어디 아픔과 슬픔은 그뿐이던가?

1초,1분이 급박한 상황에서의 7시간!
돈타령과 도저히 알 수 없는 진보와 보수의 대결로
늦춰진 인양의 세월3년!
광화문 광장의 3년!
아픔을 위로와 치유대신
일부의
비난과 냉소의 3년!

두 아이의 애비인 나의 이야기!

아이들이 이제 제법 뉴스를 본다.
아이들이 묻는다!
왜 이런 참사가 발생했는지?
아빠 두 번 다시는 이런일이 발생하지 않겠지?

앞으로의 우리의 시절에는
두 번 다시 이런일이 생겨서는 안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대의 아픔을 꼭 치유해야한다.
아픔과 고통의 원인 해결없이는 지난 시절처럼!
반복될것이기 때문이다.


미수습자분들이 꼭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시길!
사고의 진상이 거울에 비추듯 명확하게 밝혀지길!!

그것이 백년의 아픔을 치유할 첫 걸음인것이다.
두 번 다시 이 땅에 이런 슬픔이 생기지 않게할 방법이다.

잊지않겠습니다.
아픔을 치유하고 생명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

가족의 품으로 꼭 돌아오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