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줍니까, 안 보내주지. 나 하나 희생하면 식구들이 잘 살 수 있고.
연금 나오면 동생들 공부도 시킬 수 있고. (4남 2녀의 장남 이었던 나의 아버지의 심정)
베트남 전쟁이 끝으로 치닫던 1972년, 아버지는 입이라도 하나 줄여볼까 하는 마음으로 베트남을 선택하게 된다.
아무에게도 말씀하시지 않고 혼자 부산항으로 가셨단다.
아니, 죽을 각오로 떠나는 길이었다.
혹시 잘못되면 보상금으로 동생들 공부라도 편하게 시킬 수 있겠다는 마음으로 떠나셨단다.
각오는 대단했지만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그 때 그의 나이는 스물넷, 결혼을 해서 알콩달콩 신혼을 즐기는 친구들도 있었다. 하지만 4남2녀중 큰아들에게는 제 삶의 미래는 존재하지 않았다.
본인은 완전히 던져 놓고 살아 온 인생이었다. 죽을 각오로 떠나는 길이였다.
우리 아버지!
그렇게 그렇게 사셨다.
아!
아버지!!
보고싶습니다.
연금 나오면 동생들 공부도 시킬 수 있고. (4남 2녀의 장남 이었던 나의 아버지의 심정)
베트남 전쟁이 끝으로 치닫던 1972년, 아버지는 입이라도 하나 줄여볼까 하는 마음으로 베트남을 선택하게 된다.
아무에게도 말씀하시지 않고 혼자 부산항으로 가셨단다.
아니, 죽을 각오로 떠나는 길이었다.
혹시 잘못되면 보상금으로 동생들 공부라도 편하게 시킬 수 있겠다는 마음으로 떠나셨단다.
각오는 대단했지만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그 때 그의 나이는 스물넷, 결혼을 해서 알콩달콩 신혼을 즐기는 친구들도 있었다. 하지만 4남2녀중 큰아들에게는 제 삶의 미래는 존재하지 않았다.
본인은 완전히 던져 놓고 살아 온 인생이었다. 죽을 각오로 떠나는 길이였다.
우리 아버지!
그렇게 그렇게 사셨다.
아!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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