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동구리무 한번 찍어 바르지 않으셔도 고우셨던
우리 할머니 황제연 여사의 소싯적 사진입니다.
훤칠한 키에
앙다문 입술
오똑한 콧날
큼지막한 귀
아름다우셨죠?
이 이야기는 남 이야기나
다른 나라 이야기가 아닌
우리 할머님들 이야기 입니다.
제연의 생은 1922년, 겨울이 절정에 달하던 정월달에 시작되었다.
일 년 중 첫째 달, 그것도 보름날, 맏이의 고단한 삶을 예견이라도 하듯, 그녀의 생이 혹독한 겨울임을 선전포고라도 하듯 해오름 달에 삶의 서막을 올렸다.
고성 동해면의 어느 외딴 마을, 그 날은 겨울이 나지막이 내려앉은 고요한 날이었다.
제연이 살았던 시대는 여성에게는 가혹하리만치 굴레가 많았다.
여자가 아는 게 많으면 건방지고 못된 본을 본다고 글을 배우지 못하고 복종하듯 일만 하면 되는 삶이었다.
주어지지 않은 것을 탐하거나 원하는 것을 말하거나 하는 것은 일종의 나쁜 본이었다.
집이 가난했던 부산 소녀 이옥선 할머니는 열 다섯 살이 되던 해, 학교도 보내주고 밥도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말에 부산진역 앞 우동가게에 양딸로 들어갔다. 하지만 조선인 주인은 학교를 보내주기는커녕 온갖 허드렛일에 술 접대까지 시키다가 울산의 한 기생집에 옥선을 팔아넘겨 버렸다.
열여섯이 되던 1942년 7월, 기생집의 심부름으로 길거리에 나온 옥선은 백주대로에서 조선남자 2명에 의해 강제 납치되었다. 그 길로 15명의 다른 여자들과 함께 울산역을 거쳐 도문 역까지 끌려간 옥선은, 다시 기차에 실려 연길의 일본군 비행장에 부려졌다. 그 곳에서 옥선은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일본 군인에게 겁탈 당했다. 그리고 지옥이 죽어서만 가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절감하는 고통의 세월을 보내게 된다.
제연의 친구였던 을순이도 일제 시대 위안부로 끌려갔다 해방과 함께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몸은 돌아왔지만 이전의 삶을 되찾을 수는 없었다. 끌려갔던 을순이도 맞이했던 가족들도 소리 없는 비명을 질러댔다. 집은 고요했지만 원망의 목소리는 하늘을 찔렀다.
키도 훤칠하니 크고 인물도 좋고 해서 정신대 끌려갈까봐 빨리 시집보내려고. 멀리 보내려고 애썼지.-황제연 할머니의 회고-
당시 꽃다운 나이였던 제연 또한 시대의 그림자에 자유로울 수 없었다. 행여나 위안부로 끌려갈까, 하는 초조함에 제연의 아버지는 제연을 피신시키듯 결혼시켰다.
남 이야기나
다른 나라 이야기가 아닌
우리 할머님들 가슴 아픈 이야기를 기리기 위해
"일본군 "위안부" 창원지역 추모 조형물 제막식 및 기념행사가 열린다고 하네요..
우리 할머니 황제연 여사의 소싯적 사진입니다.
훤칠한 키에
앙다문 입술
오똑한 콧날
큼지막한 귀
아름다우셨죠?
이 이야기는 남 이야기나
다른 나라 이야기가 아닌
우리 할머님들 이야기 입니다.
제연의 생은 1922년, 겨울이 절정에 달하던 정월달에 시작되었다.
일 년 중 첫째 달, 그것도 보름날, 맏이의 고단한 삶을 예견이라도 하듯, 그녀의 생이 혹독한 겨울임을 선전포고라도 하듯 해오름 달에 삶의 서막을 올렸다.
고성 동해면의 어느 외딴 마을, 그 날은 겨울이 나지막이 내려앉은 고요한 날이었다.
제연이 살았던 시대는 여성에게는 가혹하리만치 굴레가 많았다.
여자가 아는 게 많으면 건방지고 못된 본을 본다고 글을 배우지 못하고 복종하듯 일만 하면 되는 삶이었다.
주어지지 않은 것을 탐하거나 원하는 것을 말하거나 하는 것은 일종의 나쁜 본이었다.
집이 가난했던 부산 소녀 이옥선 할머니는 열 다섯 살이 되던 해, 학교도 보내주고 밥도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말에 부산진역 앞 우동가게에 양딸로 들어갔다. 하지만 조선인 주인은 학교를 보내주기는커녕 온갖 허드렛일에 술 접대까지 시키다가 울산의 한 기생집에 옥선을 팔아넘겨 버렸다.
열여섯이 되던 1942년 7월, 기생집의 심부름으로 길거리에 나온 옥선은 백주대로에서 조선남자 2명에 의해 강제 납치되었다. 그 길로 15명의 다른 여자들과 함께 울산역을 거쳐 도문 역까지 끌려간 옥선은, 다시 기차에 실려 연길의 일본군 비행장에 부려졌다. 그 곳에서 옥선은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일본 군인에게 겁탈 당했다. 그리고 지옥이 죽어서만 가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절감하는 고통의 세월을 보내게 된다.
제연의 친구였던 을순이도 일제 시대 위안부로 끌려갔다 해방과 함께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몸은 돌아왔지만 이전의 삶을 되찾을 수는 없었다. 끌려갔던 을순이도 맞이했던 가족들도 소리 없는 비명을 질러댔다. 집은 고요했지만 원망의 목소리는 하늘을 찔렀다.
키도 훤칠하니 크고 인물도 좋고 해서 정신대 끌려갈까봐 빨리 시집보내려고. 멀리 보내려고 애썼지.-황제연 할머니의 회고-
당시 꽃다운 나이였던 제연 또한 시대의 그림자에 자유로울 수 없었다. 행여나 위안부로 끌려갈까, 하는 초조함에 제연의 아버지는 제연을 피신시키듯 결혼시켰다.
남 이야기나
다른 나라 이야기가 아닌
우리 할머님들 가슴 아픈 이야기를 기리기 위해
"일본군 "위안부" 창원지역 추모 조형물 제막식 및 기념행사가 열린다고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