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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일을 조정하고 다룰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제 이름을 지어 놓고 저를 기다리셨던 저의 할아버지 이야기

제 이름은 클 홍(), 자루 표()입니다.

제 이름은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할아버지께서 정해 놓으신 손자의 이름이었습니다

숲이 깊어야 범이 나오는 법”, “호랑이는 고양이와 다투지 않는다.”라는 말씀을 자주 사용 하시던 할아버지께서 큰일을 조정하고 다룰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어머니가 시집오시던 해에 아들 이름이라고 지어 주셨다고 합니다.

오늘은 큰일을 조정하고 다룰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제 이름을 지어 놓고 저를 기다리셨던 저의 할아버지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오래전 그 날, 처음 선을 봤을 당시의 할아버지 모습은 너무도 근사했다

일본으로 데려가 그 놈의 팔자를 깨끗이 세탁해 줄 줄 알았다. 할머니를 천금처럼 여기던 시아버지도 1년 만에 세상을 등졌고 막내 시동생은 겨우 네 살이었다. 집도 불에 타 버렸다. 모든 희망이 풀썩 주저앉아 버렸다. 작은 틈도 없이 자신을 옥죄는 노동 속에서도 할아버지가 계신 일본에 갈 수 있다는 희망을 끝까지 붙들고 있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해방과 함께 귀환자 지참금 통제 때문에 벌어놓은 돈도 못 들고 다시 조선으로 돌아왔다. 과부처럼 7년을 고생한 할머니는 함께 살지 못하던 시절부터 남편에 대한 원망의 마음이 깊게 뿌리내렸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몇 안되는 사진이다. 늘 두분의 간격은 저정도쯤 덜어져 있있다. >

악착같이 살림 불리던 할머니가 있었기 때문에 할아버지는 동네에서 퍼 주면서 좋은 사람 노릇 할 수 있었다. 할머니가 애 터지게 모으면 그 속도 모르고 남들에게 빌려줬다. 빌려 주고서는 잊어버려서 꼭 할머니가 가서 받아내야 했다. 악역까지 맡아야 하는 비정한 현실이었다. 할머니의 속을 모르는 건 동네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사람 좋아하고 술 좋아하던 할아버지에게 사람들은 타박 없이 후하게 외상을 주었다. 빚지는 걸 죽기보다 싫어하던 할버니는 꼬박꼬박 그 외상값을 갚고 다녔다. 어느 날은 힘겹게 농사를 지어 타작하고 쌀을 넣어 놓았는데 할아버지는 홀랑 퍼서 가난한 이웃에게 가져다주었다. 그 쌀은 식구들 먹을 쌀이 아니었다. 먹기도 아까워 빌려주고 돈을 불릴 심산이었다.

 

내가 우찌 살아왔을꼬. 눈이 캄캄하다. 남편은 맨날 나가서 남, 남한테 돈도 주고.

종 종 나락을 널어 놨거든. 그거를 퍼서 주고. 그래 놓고 도로 받는 게 아이고 떼이고.

시원찮아서 대가 안 차서. (할머니의 할아버지에 대한 회고)

 

 쌀독 바닥의 깊이를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까닭에 할아버지의 여유로움과 사람 좋은 소리는 할머니의 부르튼 생애를 더 헤집는 듯했다. 따져볼수록 좋은 사람인데 너무 고생을 시키니 밉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남편에 대한 원망은 하늘을 찌를 듯 했다. 사랑한다고 속삭이는 여보 소리에는 욕지거리부터 터져 나왔다.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참으로 사랑했다. 할머니는 그 시대에 듣기 어려웠던 여보 소리를 듣고 살았다

할아버지는 술 한 잔 드시고는 저 멀리서부터 여보를 부르며 대문을 들어섰다. 외상 값 갚느라 허리 펼 날이 없었던 할머니는 기분 좋게 허허거리는 것에도 화가 치밀어 올랐다. 할머니가 힘들게 쌓아 놓은 살림을 자기가 한 것처럼 뿌듯해 하는 것 같아 속에서는 천불이 일었다. 야속하고 원망스러운 마음에 욕부터 나왔다. 사랑 따위, 달콤한 속삼임 따위 제연에게는 사치였다. 여보나 사랑한다는 소리는 버둥거리며 억척스럽게 살아내는 자신의 일상에 대한 보상이 되기에는 너무나 먼 단어였다. 여보 소리보다는 쌀 한 톨이 더 절박했다. 미안한 마음, 고마운 마음 따위는 소란스러운 변명일 뿐이었다. 할머니에게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먹고 사는 일, 비워있는 쌀독을 채우는 일 그게 전부였다.

할아버지의 사랑노래에 취해 있을 수 없었다. 취해 있으면 집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더욱 단단해 지기 위해 제 속의 칼날을 더 모질게 갈았다. 그 칼날에 마음이 자꾸 베이면 그 흔적을 지우듯 더 무섭게 일을 해댔다. 할아버지의 몫까지 짊어지고 사는 삶이었으므로 나긋한 아내는 될 수 없었다.

 

할배가 할매를 그리 좋아하는데 우리 할매는 화가 이만큼 올라와서 싸움이 붙어삐는기라.

그러면 집안이 시끄러워지는거지. 할배가 할매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아나.

옛날에 여보라는 사람이 어디 있었노. 술 한 잔 먹고 저 멀리서부터 여보하고 오면

할매는 그기 밉어서 말도 안 하고. 나는 이리 고생을 하는데 니는 술 한 잔 먹고 오나.

여보하면 달래면 될 껀데 같이 서로 성이 나서 싸우고. 할배가 짝사랑을 했지.

 

<할아버지 회갑년 사진이다. 할아버지 술 드시는 것이 지긋지긋하여 술이라 하면 입에도 안대시던 할머니가 할아버지 회갑년을 맞아 한잔 드셨다. 그날 할머니 술한잔 드시는 모습에 얼마나 환하게 웃으셨는지..아직도 선하다. >

 

어떤 눈으로 보느냐 어느 쪽을 보느냐에 따라 사물은 달리 보인다. 누구에게는 추진력이 강한 사람이 어떤 이에게는 독단적인 사람이다. 어떤 이에게는 게으른 사람이 누구에게는 느긋하고 여유로운 사람이다. 한 사람을 통합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체를 볼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하다

안목이 있으려면 삶을, 사람을 관망할 수 있는 거리와 여유가 필요하다.

할아버지의 평가는 첨예하게 엇갈린다. 동네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인자하고 푸근한 어른, 할머니에게는 대가 약하고 시원찮고 게으른 사람이다.

일본생활동안 새로운 문물을 접하고 다양한 경험을 했던 할아버지는 단순히 먹고 사는 데에만 급급한 삶에 갈증을 느꼈다. 이상이 높고 시야가 넓었다. 눈앞에 보이는 나무를 보고 숲을 평가하지 않았다. 생각의 흐름은 바다와 같아서 동네에 흐르는 개울물을 보기 보다는 멀리 바다를 내다보았다. 멀리 보기 때문에 서두르는 법이 없었다. 들의 쑥처럼 생명력이 강하고 삶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할머니에게는 할아버지가 뜬구름 잡는 사람, 쓸모없는 사람이었다.


  할아버지는 책을 보다가 밤을 새는 사람이었다분명 시대에 대한 걱정도 깊었을 것이다아픈 시대를 건너는 동네 사람들의 애환도 마음을 써 가며 들어주었을 것이다할아버지와 내내 방을 함께 썼던 나는 할아버지의 책 읊던 소리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끊어질 듯 끊어질 듯 하면서도 끊어지지 않는 엿가락처럼 이어지던 글귀들물소리 같기도 반짝이는 모래알 소리도 같던 책 읽던 소리는 기분 좋은 자장가가 되어 주었다


 <군생활 하던 아버지에게 보낸 할아버지의 편지이다. 문장이 간결하다. 필체도 좋다.  >

할아버지가 나에게 강조했던 말씀이 있다. “숲이 깊어야 범이 살 수 있다는 것이었다.” 늘 준비하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눈앞에 보이는 것에 손에 잡히는 인기에 영합하기 보다는 내실 있고 실제적인 자질을 갖춘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큰 그림을 보던 할아버지는 사자는 고양이와 싸우지 않는다며 나에게 고양이로 아둥 바둥 살것인지 호랑이로 늠름하게 살 것인지 삶의 방향을 알려주셨다.

 

큰 사람이 되어야 한다. 숲이 깊어야 한다. 숲이 깊어야 범을 만난다.

그러려면 준비단계가 중요하다.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

호랑이는 고양이와 싸우지 않는다.

니가 호랑이 될 건지 고양이이가 될건지 니가 자세를 잡고 살아라

 

 할아버지의 아이들 사랑은 극진했다. 세상이 아름다운 이유가 아이들이 있어서 그렇다는 것마냥 아이들을 아꼈다. 아이들에게 함부로 아는 어른들은 누구라도 호되게 야단을 맞아야 했다. 자기 자식 뿐 아니라 동네 아이들에게까지 아름드리 나무의 그늘처럼 사랑을 나누어주었다. 행여 아이들을 때리는 부모를 보면 크게 혼쭐을 냈다. 부모가 자식더러 니가 사람이 될끼가 안 될끼가라며 악다구니를 쓰고 때리면 할아버지는 당신보다 더 똑똑한 사람 될끼다.”라며 아이를 감싸고 못 데려 가게 했다. 한 번은 아이가 울면서 동네를 헤매고 있어 아이를 달랜 후 자초지종을 알게 된다. 아이를 혼자 두고 동네잔치에 놀러 간 부모를 찾아가 벼락이 떨어지게 야단을 쳤다.

 

 할아버지는 나에게 연을 만들어 줄 때에도 1년의 시간을 들였다. 몇 번의 과정을 거치고 거쳐 최고로 튼튼하고 아름다운 연을 만들었다. 대나무를 잘라서 살을 만들었다. 그 살들을 그늘에 말려서 기초 재료를 준비한다. 그 다음 한지를 해 와서 밥풀을 딱딱하게 붙인다. 무명실은 사기를 깨어가지고 거기에 문질러 더 강하고 날카로운 연줄을 만들었다. 얼레도 직접 만들어주었다. 세상에 어디에도 없는 단 하나의 방패연이었다. 동네 어디에 나가도 당당했다. 어떤 연도 그 방패연을 이길 수가 없었다. 자긍심을 스스로 키워갈 수 있도록 뿌리를 튼튼하게 해 주었다.

작은 틈도 내어주지 않고 일을 하고 살림을 불리던 할머니와 손자를 소에 태우려고 소를 훈련시키는 할아버지는 극명하게 다른 가치관을 지니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유유자적하는 면은 할머니에게는 그저 게으른 것으로만 보였다. 할아버지는 산에 갈 땐 손자를 지게에 태웠다. 나무를 할 동안 손자에게 열매나 어린 소나무를 잘라서 껌처럼 씹으면서 기다리게 했다. 목표만을 보고 달리는 것이 아니라 풍경을 감상하며 걷는 삶, 느긋하게 삶을 관망하는 것이 인간 할아버지는 철학이었다. 그 철학을 그 시대의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하루하루 먹고 살기가 바쁘고 돈이 제일인 시대에는 이해받을 수 없는 한계가 있었다.

 

할아버지는 멀리 산을 내다보는 사람이었. 눈앞의 나무에 연연하기보다는 큰 숲을 꿈꾸는 사람이었다. 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했고 개인의 욕심보다는 더불어 사는 삶을 지향했다. 그러고 보니 시대를 잘못 타고 난 불운은 할머니 뿐 아니라 할아버지에게도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