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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삶의 시작

할머니의 삶의 시작

할머니의 생은 1922년, 겨울이 절정에 달하던 정월달에 시작되었다. 일 년 중 첫째 달, 맏이의 고단한 삶을 예견이라도 하듯, 그녀의 생이 혹독한 겨울임을 선전포고라도 하듯 해오름 달에 삶의 서막을 올렸다.

고성 동해면의 어느 외딴 마을, 그해 정월 보름날은 겨울이 나지막이 내려앉은 고요한 날이었다. 부엌에서는 물을 팔팔 끓고 방 안엔 가위와 실이 새 생명의 탄생을 기다리고 있었다.
할머니의 삶의 첫 울음소리는 고요를 깨고 하늘에 닿았다.

할머니는 9남매의 장녀로 태어났고, 태어났을 때엔 이미 일제 식민 통치의 백성이었다.
제 나라도 없이 시대의 폭압에 스스로 맞서며 살아야 하는 찬 겨울 같은 운명이었다.


“밥만 먹고 일만 하면 된다고 일만 시키고.
일만 하면 좋다고 하고. 일을 해야지만 인정받았지.
9남매 장녀인데 친구 사귀고 뭐 할 게 있노.
죽으나 사나 일, 놀아본 적이 없어.
일 일, 어릴 때부터 가마니 뜨고 새끼 짜고 갯일 하고”


살림 밑천이었던 할머니는 제 몫보다 몇 갑절의 일을 해냈다.
그럴 때마다 부모님들은 칭찬하고 인정해주었다. 부모님의 인정은 고된 노동 뒤에 따르는 달콤함인 동시에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거미줄이기도 했을 것이다.

할머니는 고성군 동해면 전도부락 양촌리에서 태어났다. 외딴 곳이어서 세상 돌아가는 얘기도 늦었고 친구들과도 자주 마주치지 못했다. 9남매의 장녀였던 탓에 친구가 있어도 같이 놀 수는 없었다. 부모님들이 너무 엄중해서 마실도 가지 못했던 것이다.

스스로 무엇을 좋아하는지 꿈이라는 것은 무엇인지는 그런 물음은 품어본 적 없이 성장했을 터이다.

할머니의 시대에는 누구나 공부를 하고 꿈을 키울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그리고 일상은 단지 고된 노동의 연속이었다.
부모님들은 언제나 새벽에 나서서 저녁 늦게까지 노동으로 하루를 채우고도 밤에는 새끼를 꼬거나 가마니를 짰다.
정말 등골 휘게 일해야 입에 풀칠을 할 수 있었다. 맨 상투에 낡은 두건을 동여 맨 부모님들은 허리 펼 시간도 없이 일에 매달렸다. 그렇게 고된 삶을 사는 부모를 보는 자식들은 덩달아 부지런할 수밖에 없었다. 장녀였던 할머니의 삶의 무게는 부모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내 살아온 역사가 억쑤로 깊으요.
내 살아온 거 말로 다 몬한다. 내 같이 살아 온 사람 없을 끼다.
죽고 살기로 밥 먹는 것만 생각했다. 아이고 참. 내 살아온 거 생각하면...
내 살아온 거 말로 다 몬한다. 내 같이 살아 온 사람 없을 끼다.”


그 긴 세월동안 할머니다 겪었을 모진 풍파, 세찬 비바람을 헤치면서 마주해야 했을 절망과 분노를 누가 속속들이 알 수가 있을까. 묶어놓고 때리면 피할 길이 없듯이 할머니의 시대의 폭압을 그대로 맞아야 했다.

시대를 한탄하고 자신의 처지를 절망하며 주저앉을 법도 했을 텐데 지켜야 하는 가족이 있고 살아야 하는 이유가 분명하였기에 악착같이 그 억쑤로 깊은 풍파는 견뎌 내 주신 덕에 겨울 초입 할머니랑 따신 방에 앉아 있는다.

늦었지만
할머니의 삶에 할머니를 넣어 드리고 싶다.

사진찍은날
1. 지갑속 깊이 품고 다닌 할머니 사진 2016년 2월 22일(월)
2. 손자 입에 밥들어 간다고 좋아하는 사진 2016년 3월 5일(토)
3. 할머니 방에서 TV시청 2016년 3월 13일(일)
4. 할머니 동생분들과 집앞에서 2016년 1월 10일(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