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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불태운 다음엔 인간을 불사르게 된다

책을 불태운 다음엔 인간을 불사르게 된다

프랑크푸르트 중심, 뢰머광장(Roemer platz)엔 정의의 여신(Justitia)상이 우뚝서있다.

뢰머광장(Römerberg)은 마인강변에 자리잡은 프랑크푸르트 구도심 중앙에 위치한 광장이다.
뢰머(Römerberg)는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대관식이 끝난 후 축하연이 열렸던 유서깊은 장소로 광장은 뢰머와 대관식이 열렸던 대성당 사이에 조성되어 있다. 첨탑처럼 생긴 경사가 심한 지붕과 목조 기둥이 장식적인 효과를 보여주고 있는 뢰머는 중세이래로 600여년간 시청사 건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뢰머는 상인들이 시의회에 이 건물을 1405년에 팔았다고 하며 그 이후 프랑크푸르트 시청으로 바뀌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프랑크푸르트 시청의 발코니에서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프랑크푸르트 시민들의 환호와 찬사를 한 몸에 받은 한국인이 있다. 그는 바로 우리나라 최고의 축구선수 차범근이다."

분데스리가 1부 팀인 프랑크푸르트(Frankfurt) 축구팀의 차범근 선수는 만년 하위권의 팀을 단숨에 상위권으로 끌어올리는 발군의 활약을 펼쳤다. 1979년부터 1983년까지 4년간 프랑크푸르트에서 뛰며 122경기 46골을 기록하면서 팀의 전성기를 주도했다.

특히 1979~80시즌 팀 역사상 최초로 유럽축구연맹(UEFA)컵 우승을 이끈 일등공신이었다. 당시 선수들이 우승컵을 들고 프랑크푸르트로 개선, 시청  발코니에 서서 뢰머광장에 모인 시민들의 뜨거운 환영을 받는다. 외국인 최초로 한국인 차범근 선수가 시청 발코니에 선 것이다. 그것도 들러리가 아닌 단연 주역이었다. 훗날 시청 발코니에 선 두 번째 한국인은 그의 아들 차두리 선수였다.

“책을 불태운 다음엔 인간을 불사르게 된다”

뢰머 광장 정의의 여신(Justitia)상 주변 바닥을 살펴보면 이 광장이 더욱 특별하다는 것을 느끼게할 동판에 새긴 글귀를 찾을 수있다.

그 동판에는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1797~1856)의 글귀가 새겨져 있다. “책을 불사르는 것은 오직 시작일 뿐이다. 결국 인간을 불태우게 된다.”라고 적혀있다.

Das war ein Vorspiel nur. Dort wo man Bücher verbrennt, verbrennt man auch am Ende Menschen.
– Heinrich Heine, “Almansor” (1820-1821)
 
“where books are burned, people aren’t far behind.” 

1933년 5월10일 밤, 나치당을 지지하는 극우파 대학생들이 횃불과 장작더미를 들고 베벨 광장에 모여들었다. ‘비독일적 사상’을 담은 책을 도서관에서 끌어내 불태우기 위해서였다. 에밀 졸라, 프란츠 카프카, 카를 마르크스, 지그문트 프로이트, 토마스 만 등 셀 수 없이 많은 작가들의 책 2만 권이 화염 속에서 불타올랐다. 대학생들이 나치 구호와 선동가를 부르며 환호했다. 나치당 선전 책임자인 요제프 괴벨스는 선언했다. “독일의 미래 세대에게 필요한 것은 책이 아니라 인격이다. 오늘 이곳에서 과거의 악령을 불태우는 젊은이들은 그 강인한 인격의 상징이다. 옛 지성은 잿더미로 사라지고 그 잔해 속에서 새 인격이 싹틀 것이다.”

1932년 7월 총선에서 나치당은 제1당을 차지했고 아돌프 히틀러는 이듬해인 1933년 1월 총리에 취임했다. 히틀러의 최우선 과제는 ‘독일 국민 계몽’이었다. “조국 독일의 민족적 재건에 대해 국민을 계몽하고 선전”할 제국선전부를 설립하고 그 장관으로 괴벨스를 임명했다. 괴벨스는 순수한 독일 정신과 인격을 일깨운다는 명목으로 유대인, 외국인, 공산주의자, 자유주의자 등의 작품을 불태우는 데 앞장섰다. 분서는 베를린의 베벨 광장뿐 아니라 독일의 여러 도시에서 이뤄졌다. 참혹한 나치 독일 역사의 서막이었다. “결국 인간을 불태우게 된다”는 하이네의 예언은 아우슈비츠에서 현실이 됐다. 당시 유럽에 살고 있던 약 1100만 명의 유대인들 가운데 절반이 넘는 약 600만 명이 학살됐다.


독일은 나치 독일의 만행에 대한 인정과 반성을 꾸준히 해왔다.
과거 빌리 브란트(Willy Brandt) 전 서독의 연방수상은 1971년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 있는 전쟁희생자 비석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하기도 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최초의 나치 강제 집단수용소인 바이에른주 다하우 수용소를 찾아가 빗속에서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지금까지도 무수한 나치 전범들을 찾아내 법정앞에 새운다.
나치 과거를 짊어진 독일은 끝임없이 반성하고 사과하고 이웃국가와 화해하고 있다.

뢰머 광장에 새겨진 하인리히 하이네 “책을 불사르는 것은 오직 시작일 뿐이다. 결국 인간을 불태우게 된다.”라는 글귀 또한 독일 사회 깊숙이 뿌리내린 공동의 역사적 기억과 반성문과 같은 것이다.

이러한 기념물은 독일인들에게 역사를 제대로 가르치고 기억하게 하려는 교육의 장이며 전세계사람들에게는 지난과거를 반성한다는 반성문이다.

독일인들은 “역사를 직시하는 것이 우리 사회를 강하게 만들었다”라고 한다.

전 세계에 사죄와 화해를 진지하게 전해 나가는 독일의 자세에 감사함을 전한다.

2015년 1월 19일 이스라엘을 방문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예루살렘의 야드 바 홀로코스트 추모관을 찾아서 ‘추모의 홀’에서 헌화하고 있는 사진이다. 이 홀은 2차대전 때 나치에게 희생당한 600만명 유대인들의 집단 묘지이다.


아베 총리는 한시간 정도 기념관 견학을 마친 뒤 연설에서 “유대인들이 입은 고난을 전 인류의 유산으로 남기려는 여러분들의 노력에 마음으로부터 경의를 품고 있다. 특정 민족을 차별하고 증오의 대상으로 삼는 일이 인간을 얼마나 잔혹하게 만드는지를 배울 수 있었다. 홀로코스트를 두번 다시 되풀이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차별과 전쟁이 없는 세계, 인권이 보호되는 세계를 실현하기 위해 계속 노력해 가야 한다. 일본도 인류가 인권을 지키고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세계의 평화와 안정에 적극적으로 공헌해 갈 생각이다. 지난 전쟁이 끝난 뒤 70년이 되는 올해 이런 비극을 두번 다시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표명한다”고 밝혔다. 그는 견학을 끝낸 뒤 남긴 방명록에는 “희생자분들에게 깊은 추모의 뜻을 전한다. 아우슈비츠 해방 70년을 맞는 올해 이런 비극이 다시 되풀이되지 않아야 한다는 결의를 밝힌다. 일본 내각 총리대신 아베 신조”라고 적었다고 일본 <엔에이치케이>(NHK) 방송이 전했다.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비롯해 일본이 한반도 식민지배 과정에서 가한 고통이나 일본군이 중국에서 저지른 난징대학살에 대한 언급이나 반성은 전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