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이라 며칠 타지에서 지내던 아들이 집으로 돌아왔다. 기차역에 내린 그의 첫 발걸음은 우리 집이 아닌 할머니댁이었다.
며칠 전부터 할머니와 점심 약속을 잡아두었다며, 오랜만에 할머니를 봬러 가야겠다는 마음이 가득해 보였다.
할머니와 마주 앉아 식탁에 놓인 음식을 깨끗이 비워내는 아들의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아들은 식사 중에 이런저런 이야기도 꺼냈다.
2월에는 친구와 외국에 잠시 여행을 다녀올 계획이라고 했다.
"조심히 다녀와라" 하신다.
그리고 3월에는 군 입대가 예정되어 있다고 하니 "추운 겨울이 지나가고 나서 입대하게 된 것이 다행이다." 하신다.
반찬 하나하나를 남기지 않고 맛있게 먹으며 할머니와 웃음 섞인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참 좋았다.
그 모습이 할머니의 마음에 얼마나 큰 기쁨을 줄지 짐작이된다.
2월 중순 큰 수술을 앞둔 어머니에게는 이 시간이 마치 삶의 즐거움을 선물 받은 듯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이런 소소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느껴졌다.
사랑은 때로는 작은 것에서 가장 크고 깊게 드러난다.
아들과 할머니 사이의 약속은 단순한 점심 식사를 넘어 마음을 나누는 귀한 시간이 되었다.
아들의 모습이 내게도 잔잔한 감동으로 남았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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