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오늘 제가 속한 창원시의회 환경해양농림위원회에서는 현장답사를 다녀왔습니다.
해양신도시,구산면해양관광단지,돝섬이 그 답사현장이었습니다.
그 현장에서 떠오른 제 지난날입니다.

한 청년의 이야기입니다.
마산만이 되 살아나길 원했습니다.
그 청년은 마산만을 위해 일 했습니다.
마산만이 매립되는 걸 막고싶었습니다.
시의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했습니다.
시장도 찾아뵈었습니다.
해수부장관도 찾아뵈었습니다.
시청앞에서 기자회견도 수차례했습니다.
매립현장에서 마산만 매립을 반대했었습니다.
시의회 본회의장에서 간절히 매립이 진행되지 않길 바랬습니다.
제 간절함이 부족했을까? 매립은 진행되었습니다.
온다는 가포신항의 컨테이너들은 거짓뻥이였습니다.
50만 인구가 될거라는 마산지역의 인구도 뻥이였습니다.
고용창출이 거대할거란 장미빛 비전도 뻥이였습니다.
그 당시 매립을 추진하고 기획했던 중앙부처 공무원과 지방정부 공무원들은 이제 은퇴했습니다.
덩거러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거대한 땅과 창원시의 빚만 남았습니다.
정작 책임을 져야 할 그들은 온데간데 없습니다.

어쩔수 없습니다.
그래도 이 끝없이 이어진 토건의 패착을 이제는 끊어내어야죠?
더 이상 맹목적인 토건이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하지 않는 다는 것을!
그리고 잘못된 매립이라는 정책적 결정의 피해는 고스란히 지역주민의 몫이라는 교훈으로 삼아야겠지요?

창원시의회 환경해양농림위원회의 짐이 무겁습니다.

Posted by 멩물

댓글을 달아 주세요

깜박 잊어버린 그 이름 권환 선생님을 떠 올려봅니다.

오늘은 제15회 권환 문학제 참석차 진전면 오서리에 왔습니다.
제 고향동네입니다.

권환(權煥, 1903년 1월 6일 ~ 1954년 7월 30일)선생님은 1930년대 초 프로문학의 볼세비키화를 주도한 대표적인 카프 시인이자 비평가이십니다.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에스페란토: Korea Artista Proleta Federacio), 통칭 카프(에스페란토: KAPF 코아뽀포)는 1925년 8월에 결성된 사회주의 문학단체입니다.

본명은 권경완(權景完)․윤환(允煥)이며, 1903년 1월 6일 경남 창원군 진전면 오서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일본 야마카다 고교를 거쳐 교토제국대학 독문과를 졸업했습니다. 학부 재학시 독서회 사건으로 구금 투옥된 바 있다합니다.

오서리는 열에 일곱은 일가인 안동권씨 집성촌입니다. 마을 한가운데엔 느티나무 한 그루가 서 있고, 맞은편 오서리 옛 장터 뒤에 경행재(景行齋)가 있습니다.

경행재는 권씨 문중의 정신이 깃든 집입니다. 백 년도 더 된 이 집은 건립 초기엔 문중의 재실 겸 한학을 가르치던 서숙으로 사용되었고, 일제 강점이 시작된 1910년부터는 사립 경행학교로 이용되었습니다.

경행학교를 설립한 이는 권환 시인의 부친인 권오봉 선생인데, 그는 민족정신이 투철한 지역의 선각자였습니다. 상해임시정부에서 활약하다 순국한 죽헌 이교재 선생과, 기미년 삼진의거를 이끌었던 백당 권영조 의사 등이 모두 경행학교에서 민족운동의 싹을 틔웠으니, 경행재야말로 이 지역 민족운동의 요람이었습니다.

오늘 깜박 잊어버린 그 이름 권환 선생님을 떠 올려봅니다.
------------------------------
두 할머니 / 권환


오늘도 두 할머니
홰나무 밑에 나와 앉았다
청파 다섯 단 물크러진 홍시 일곱 개
아직도 남았다 흙먼지 부-옇게
경학원(經學院) 긴 골목은 벌써 저물어
바쁘게 오고가는 사내들 색시들
뉘 하나 돌보지도 않았다
오! 두 할머니에게 복이 있으옵소서


--------------------------------------------------------
Posted by 멩물

댓글을 달아 주세요

청소년 밥차!

분류없음 2018.10.27 01:08 |
공부도 좋고
노는것도 좋고
그 무엇보다도 밥한끼 먹고 하는게 좋지요?

거리에 나온 우리 아이들
혹시나
배 곯지는 않을까해서
뜻있는 분들이
시작한 청소년 밥차!

어느듯 1년
고맙게 1년이 흘렀습니다.

Posted by 멩물

댓글을 달아 주세요

네비게이션에는 아직 바다입니다.
그러나 이곳은 육지가 되었습니다.

창원시의회 환경해양농림위원회에서 해양수산국 소관 명동마리나, 웅동복합단지,LNG 벙커링 예정지 현장방문을 하였습니다.

바다를 땅으로 이용하는 공간들 입니다.

지난 시절 우리에게 부족했던 점들이 명확하게 들어난 곳이기도 합니다.
바다의 현명한 이용과 지속가능성을 담보하지 못한 개발 중심의 공간입니다.

바다의 지속가능하고 현명한 이용을 위해서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간의 정책 일관성 유지가 매우 중요합니다.
국가정책과 지방정책간의 조정이 필요하며, 일관성을 유지함으로써 연안관리역량을 향싱시켜야 했었습니다.
그러나 중앙정부의 일방통행식 정책과 개발과 보존의 정책 결정을 위한 지방정부의 담당조직의 힘이 부족했습니다.
이는 연안의 현명한 이용이나 보전보다는 개발에 편향되어 진행되면서 나타났습니다.

앞으로는 바다를 이용한 사업의 투명성, 일관성,객관성을 중심으로 연안관리와 이용에 대해 기본관리원칙을 수립하여 국가정책과 지방정책간의 이해상충을 줄여야겠습니다.

여튼 저는 바다가 땅이 되는것이 좋지 못합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땅으로된 이곳을 바다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현명하게 활용할 방도를 새우고 실현시키는 것이 제 일이기도 합니다.

Posted by 멩물

댓글을 달아 주세요

얼마전에 지역행사장에서 가포고등학교 북면이전 반대 서명을 받고 계시는 분들을 만났습니다.

우리동네에서는 가포고 이전문제로 이해당사자간 의견이 충돌되고있습니다.
이런 충돌은 갈등으로 갈등은 불신과 비난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이럴때 필요한게 툭터놓고 이야길 풀어낼 소통이 아닐까 합니다.
이해와 합의를 위한 소통을 위해 집고 넘어 갈 몇가지 원칙을 적어봅니다.

소통(疏通)은 트일 소, 통할 통, 막힌 것을 터서 통하게 한다는 말입니다. 막힌 강물을 터서 바다로 흐르게 한다는 뜻에서 나온 말입니다.
이 말은 중국의 성군(聖君)의 대명사로 일컬어진 '요순'(堯舜)시대에 둑을 쌓아 강물을 막는 대신, 강물이 막힘없이 바다로 흘러갈 수 있도록 물길을 터주었습니다. 그 결과 강물이 범람하는 일이 없어져 백성들은 홍수를 걱정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에서 유래하였답니다.
중요한 것은 강물이 바다로 흐르게 하는 것이지 바닷물을 강으로 밀어 넣는게 소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일에서 소통의 뜻을 거꾸로 이해할 때가 많습니다.
목적지인 바다와 같은 정책을 이미 결정해 놓고 홍보하고 납득과 설득을 통해 이해를 구하는 것이 소통인 줄 알고 있는 분들이 계십니다. 이는 바닷물이 거꾸로 강으로 침범하는 격입니다.
이것은 지짜배기 소통이 아닙니다.

공공의 자원인 학교를 지속 및 이전을 하려면 그 계획의 결정에 대해 이해당사자간의 민주적인 승인을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영향 받는 사람들이 계획단계에서 부터 의사 결정에 참여하되, 충분한 정보와 결정 권한을 가지고 참여할 수 있도록 의사결정 과정을 마련해야만 민주적인 승인을 얻을 수 있을것입니다.
특히 지역민, 학부모, 동창회, 재학생(시민)들은 흔히 정보와 정치적인 힘 약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들이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계획단계에서, 자유롭게 의견을 제시하고 정보를 획득할 수 있도록 보장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이해당사자간의 민주적인 승인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다양한 대안을 검토하고 노력 해야합니다.이전을 대신할 수 있는 방법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여러 대안들을 검토하기 위해서는, 학교에 대한 수요를 정확하게 평가해야 합니다.
대안들을 검토할 때에는 정책, 제도 등을 포함한 모든 관점에서 평가해야 하며,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참여하여 투명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각 안들이 가지는 사회적 영향과 환경적 영향도 경제성과 똑같이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합니다. 여기서 대안이란 이전을을 전제로 하고 그냥 이론적인 유희를 위해 대안들을 검토하는 게 절대 아니어야합니다.
현재 인구수와 요구로 인한 학교신설의 비용의 크기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하므로 신중한 고려가 필요합니다. 또한 계획 당시엔 예상하지 못했던 사회적 환경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이를 적절히 평가하여 반영해야합니다.
학교는 배움의 장소이전에 공동체의 기억의 장소입니다. 그들에게는 삶의 토대이며 주축이기도 합니다. 이점또한 지역 공동체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사안입니다.

소통을 통한 민주적 의사 결정과 대안마련을 위해 그리고 때로는 웅덩이를 채워야만 흐르지만 막힘 없는 강물이 결국 바다로 흐르듯이 진정한 소통을 통해 가포고등학교 문제 해결을 바라면서 몇 자 적어둡니다.
Posted by 멩물

댓글을 달아 주세요

시의원이 된지 100일 넘어갑니다.
그래서 초심의 마음을 꺼내어 놓습니다.

사람들과 숲을 이루고 삶의 터전을 만들어 가길 원합니다.
하루를 살아도 당당한 산맥처럼 살고싶습니다.
그리고
항상 바보처럼 살고픈 아름다운 청년 전홍표입니다.

시민 위에 군림하지 않되, 무조건 복종하지도 않겠습니다.
가까운 해결사이자, 멀리 내다보는 안내자 같은 시의원이 되겠습니다.

겉 멋으로 뽐내지 않고
시민의 배경이 되어주는
동반자같은 시의원이 되겠습니다.

==============================

아름다운 그대의 배경이 되고 싶다 / 박성철

지친 길을 걷다
언제든 쉬어갈 수 있는 벤치로

별이 빛을 발하기 위해
풍경이 되어주는 어둠으로라도

그대가 즐겨 읽는 책의 밑줄로
혹은 그대가 부르는 삶의 노래 낮은 화음으로

뽐내지 않고
세상의 배경이 되어주는 저녁노을처럼
그대의 배경이 되고싶다.

그대에겐 사소하지만
그대와 관련된 그 어느 것 하나도
사소한 것일수 없는 나이기에

그대가 있음으로
나는 그 주위의 배경이 되고싶다.

Posted by 멩물

댓글을 달아 주세요

상피제(相避制)

고려·조선시대 일정한 범위 내의 친족간에 동일관사(同一官司)나 또는 통속관계(統屬關係)에 있는 관사(官司)에 취임하지 못하도록 하거나 혹은 청송관(聽訟官)·시관(試官) 등이 될 수 없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사전에서 찾은 말이니 어렵습니다.
쉽게 이야기 하면 친인척은 같은 관청은 물론 업무상 관계 있는 곳에 근무하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였습니다. 서로 피하는 제도라는 뜻입니다.

이 제도는 인정에 따른 권력의 집중을 막아 관료 체계가 정당하게 운영되도록 하기 위해 시행되었습니다.

상피제는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씨족 의식 혹은 문중 의식이 강하여 문벌을 형성하고, 또 사돈의 8촌까지도 찾는 전통적인 관습 등이 강해 관료 조직의 정당한 운영 과정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녔음에 틀림없습니다.

조선시대는 고려때에 비해 상피제의 적용 범위가 더욱 확대되었습니다.
상피제 세부 규정은 세종 때에 성립되었습니다. 적용 범위는 고려시대와 마찬가지로 친족·외족·처족 등의 4촌 이내로 한정했으나, 법외(法外)에까지 확대, 적용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또, 의정부를 비롯, 병권을 전장(專掌)하는 군사기관과 법을 다스리는 청송관(聽訟官)까지 규제하였습니다. 조선후기에 들어오면서 과거 응시자와 시험감독인 시관(試官) 사이에도 적용될 정도로 엄격해졌했습니다. 지방관의 경우에는 특별한 연고가 있는 지역에는 원천적으로 임명이 금지되었습니다. 이해관계가 있으면 상피를 적용해 권력의 집중을 막았습니다.

그러나 조선후기 상피제의 규제가 덜한 외척이 권력을 독점하게 되면서, 상피제도가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관료 체계의 정당성이 무너지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조선의 국운이 기울기 시작한 시점도 상피제도의 붕괴와 같이하고 있었습니다.

그만큼 상피제도가 관료체제의 원활한 운영과 투명성을 유지하는데 큰 힘을 발휘했던 것 입니다. 

상피제는 신라 고려 조선시대때 혈연으로 이어진 사람들의 부정부패를 막으려는 의도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하지만 혈연으로 이어진 사람들의 부정부패는 천년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서울교통공사의 친인척 채용비리 의혹과 강원랜드 채용비리 사건은 지금 이 시대에서도 벌어지고 있으니 말입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목민심서에서 불환빈 환불균(不患貧 患不均)-'백성은 배고픔보다 불공정한 것에 분노한다하였습니다. 저울 한 눈큼만큼이라도 공정하지 않으면 정치라고 할 수없다.하였습니다.
 따라서 친인척 채용비리 의혹에 대해서는 무엇보다도 명명백백한 조사와 그에 따른 벌 또한 엄중히 내려져야겠습니다.
그 것이 대한민국의 기강을 세우는 것이며 노력하는 사람과 땀이 공정한 결과를 가져 올 수 있는 정의로운 사회의 초석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천년의 상피제를 통해 알 수 있었던 것은 제도적 법적 장치보다 중요한 것은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자발적인 노력, 그리고 여론의 지속적인 감시입니다.

지금도 상피제를 논하니 창피하지않습니까?
Posted by 멩물

댓글을 달아 주세요

오늘 창원시의회 문화역사연구에서는 고적답사를 진행하였습니다.

이번 답사지는 마산지역이었으며 아래의 유적지를 방문했습니다.

1. 현동의 가야고분군 2.진동 고인돌유적지 3.진해관아 4.합성동 가야고분군

1. 현동의 가야고분군은 국도5호선 나들목 공사구간입니다.

3~5세기 아라가야 지방세력의 것으로 추정되는 가야시대 최대 규모 고분군이 발굴됐습니다. 특히 바다와 인접한 이곳에선 고대 항해용 선박을 형상화한 배 모양 토기가 출토돼 관련 학계의 큰 관심을 끌고 있는 잊혀진 창원지역의 중요한 가야사 유적지입니다.
이 곳에서 출토된 가야시대 항해용 돛단배를 형상화한 토기는 가야 고분에서 출토된 것으로는  처음입니다.
고대 창원지역에서 가야 사람들이 중국·낙랑·왜 등과 바다를 통해 활발하게 교역했던 선박 모습을 가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높은 보물급 유물로 인정을 받았기에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가야실에 전시 되어있습니다.

진동 고인돌유적지와 진해관아터입니다.
현재 진동이란 지명은 진해의 동쪽이란 뜻입니다.

조선말 진동은 진해현이었습니다.  진해현 관할은 서면, 북면, 동면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러시아가 마산을 해군극동함대 기지로 사용할 즈음에 일본이 이것을 견제하기 위해 현재의 진동면 위치에 있었던 군항지를 진해 웅천지역으로 옮기면서 서면, 북면, 동면 가운데 동면을 진동(鎭東)이라 이름 지으면서 진동이 되었습니다.
진짜 진해는 현재 진해현 관아가 있는 이곳이 진해인 것입니다.

창원 진동리 유적은 진동천과 태봉천이 만나 진동만으로 흘러 들어가는 넓은 충적지에 위치한 국내 최대 규모의 청동기시대 집단묘역(集團墓域)입니다.
 2004년 진동토지구획 정리사업 과정에서 고인돌과 석관묘 수십기가 발견되었던 청동기 시대의 대규모 유적지입니다. 또한 지난 2006년 사적 제472호로 지정되었던 곳으로,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청동기 시대 집단 묘역으로 평가받는 곳입니다.

그리고 진해현 관아는 사상의학의 창시자 이제마와 안중근 의사의 할아버지 안인수가 현감으로 지냈던 곳이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둘러본 곳이 합성동 가야고분군입니다.
마산 합성동고분군은 창원시 마산회원구 합성2동 산21 일원에 분포해있었습니다.

마산 삼성병원 뒤편의 구릉과 팔룡산 골짜기에 형성된 고분군입니다. 봉분 직경 25m, 높이 4m의 거대한 고분이 있는데, 나무가 심겨져있고 봉분의 곳곳에는 도굴의 흔적이 있었습니다.

이곳은 순장한 두마리의 말머리 유물이 발견되기도 한 곳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관심부족으로 아직까지 고분은 방치되고 있는 실정이었습니다.
대단한 우리지역의 가야사 유물이지만 방치되어 있는 모습이라 안타까웠습니다.

오늘 고적답사를 통해  잊혀졌던 "제4의 제국 가야"의 한 줄기가 창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귀한 우리의 유물을 제대로 알릴 수 있는 박물관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우리지역의 유적과 유물들을 단순히 보존과 배치가 아닌 스토리텔링 덧입힌다면 역사와 정통의 도시로서의 창원으로 발돋움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Posted by 멩물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가야일보 2018.10.23 01:57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고맙습니다
    가야문화 연구와 가야사 복원에 가야일보도 함께 하겠습니다
    늘 건승하시길 기원드립니다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은 모두 한자문화권입니다.
고사에서 유래된 한자 관용어인 고사성어를 사용한다는 것도 한자문화권에 속하는 나라들의 공통적인 특징입니다.
공통의 고사성어도 있는 반면 각 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반영한 고사성어들도 각나라별로 많습니다.
오늘 읽은 글에서 우울하지만 우리나라에만 있는 고사성어를 알게되었습니다.

각자도생(各自圖生)!

스스로 살기를 도모한다는 뜻입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각자 스스로 살 길을 찾을 수밖에 없었던 평범한 사람들의 뼈저린 경험에서 생겨난 고사성어랍니다.

우린 이렇게 너무나 각자도생(各自圖生)에 익숙한 삶을 살도록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임진왜란, 정유재란, 정묘호란, 병자호란,일제강점기, 6.25 그때마다 그랬습니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것은 역사적 깊이 내재되어있는 각자도생(各自圖生)해야만 한다는 트라우마 치유가 아닌가 싶습니다.

남을 밟고서야만 살 수있었던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역사!
이제 그 역사의 아픔을 걷어내야 할 것 같습니다.
혼자만 잘 살면 무슨 재민겨?
누구나!
인생 알몸으로 왔다가 옷 한벌 걸쳐입고 가는데 말입니다.

우리나라만의 고사성어 각자도생(各自圖生)!이 이 밤을 서글프게 합니다.

Posted by 멩물

댓글을 달아 주세요

오늘 오후엔 마산만봉암갯벌에서 보냈습니다.

2008년 이전의 일들입니다.
여름철만 되면 봉암갯벌에서는 이유없이 물고기들이 죽어갔습니다.
공교롭게도 마창진환경운동연합과 마산해수청에서는 "시민의 과학 시민의 눈"이라는 모토로 봉암갯벌 시민 모니터링을 실시 했습니다.

시민모니터링! 10년의 역사입니다.
수질, 식물, 대형저서동물, 조류, 야생동물 흔적조사등 다양한 분야의 시민참여가 지속적으로 이뤄졌습니다.

 이 사업의 성과로  봉암갯벌에서는 멸종위기종인 흰목물떼새, 알락꼬리마도요 등의 바닷새와 보호대상해양생물인 붉은발말똥게의 서식 등이 확인되었습니다.
그리고 2011년 12월 16일에는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되기도했습니다.

어쩌면 시민들의 지속적인 관찰과 관심으로 이뤄낸 결과 입니다.
더욱이 시민의 눈 시민의 과학의 힘으로 이제 봉암갯벌에서 수많은 물고기가 폐사했다는 소식은 듣기 힘들어 졌습니다.

오늘도 시민들과 학생들 틈에서 봉암갯벌의 수질을 같이 조사했습니다.

지역의 환경을 위해 무언가 할 수 있어 기쁜 하루였습니다.

이제 ‘마산만 봉암갯벌’은 100만 거대도시에서
자연과 인간의 공존의 사례지역이며
도심 갯벌의 중 중요성을 알리는
갯벌 생명터전의 보고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또한
참여를 기반으로한 생명 복원의 거점지역이자 훌륭한 생태교육장이 되었습니다

Posted by 멩물

댓글을 달아 주세요

 "내가 만들자 회사!"

1인 창조기업은 창의성과 전문성을 갖춘 1인 또는 5인 미만이 사업을 하는 것입니다. 1인 창조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1인 창조기업 활성화 방안’ 이 2009년에 발표되었고, 이후 2011년에 ‘1인 창조기업 육성에 관한 법률..

주민 주인의식을 함양시켜 나가는 곳

내 어릴적 면사무소와 동사무소는 지방 행정의 가장 중심이 되는 기관이었습니다. 서류 신청과 발급! 그리고 큰 강당 같은 곳은 정부 정책의 이해와 협조를 구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생활수준의 전반적인 향상되고 주민생활과 밀접한..

습지에서 인간의 삶을 읽다

김훤주 기자님의 "습지에서 인간의 삶을 읽다" 출판기념회에 참석 중입니다. 습지에 관심이 깊어 몇 권의 책을 보았습니다. 어떤 항목은 외울 정도입니다. 습지의 기능 등등! 그런 책들은 읽고 나면 늘 공허했습니다. 그러나 이 책..

노산의 문학적 업적과 더불어 그의 삶의 행적 또한 신중하게 보아야 하겠다.

노산 이은상은 친일잡지『조광(朝光)』의 주간으로 재직했고,만주국 기관지 《만선일보》에도 재직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1955년 이승만 80회 생일 때 '송가(頌歌)'라는 제목의 경축시를 발표했다. 이은상은 해방 후에 이승만 ..

 "내가 만들자 회사!"
 "내가 만들자 회사!"
 "내가 만들자 회사!"
주민 주인의식을 함양시켜 나가는 곳
주민 주인의식을 함양시켜 나가는 곳